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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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destrain Project.

흥미로운 사례-

공공예술에 붙은 매우 키치하고 따분한 이미지를 좀 날려줄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1990년에 Yyette Helin이라는 아티스트가 기존의 공공예술이 ‘조각’ 혹은 ‘벽화’같은

매우 장소에 얽메이고, 결정적으로 단순히 예술작품을 공공장소에 갖다놓는 방식으로

이해되는것에 반발심을 가진데서 시작된 작업이라고 한다.

다음은 그의 생각이자 프로젝트의 소개말 중에 일부 발췌한 것이다.

Always wanting to make public art, Yvette created the pedestrians as an answer to a strong desire of hers to make artwork in the public arena  and be free from the limitations of public sculptural installations, allowing her to create live works that could move and flow with the surrounding people and constantly changing environments.


예술가 개인의 해방(혹은 도피)와 공공으로부터의 해방(도피)이 공존하는 공공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보행자복장(ped-)’을 함으로써 예술가는 사인자체, 곧 ‘상징’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마스크를 쓸 때 새로운 정체성을 얻듯이, 여기서 얻는 새로운 정체성은

‘anynymous’혹은 ‘everyone’이다.뭐, 시민일반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ped man’이 하는 다양한 행위는 두터운 해석의

층을 가질 수 있다. 그 자체가 어떤 행위를 할 것을, 혹은 하지 말 것을 끊임없이

‘상징’하게 되기 때문이다.컨대, 사진에서처럼 경범죄에 해당하는! 그래피티를

벽에다가 멋들어지게 하고(혹은 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든가 하는 이미지는

유쾌한 충격을 준다. 그렇지만 카이홀맨같은 광고나 워낙에

이벤트성 판촉행사 및 광고등이 판을 치는지라 이것들과 차별되려면 여기서의

코스튬에서만큼 매우 세련되고 프로페셔널한 어법이 구사되어야할 것 같다.  

이것의 장점은 다른 ‘보행자’, 곧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실제 보행자인 사람들과 얘기를 하거나

즉석에서 놀이를 한다거나의 이벤트가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노력

의도나 여력에 따라서 이 작업의 성격자체마저 변할 수 있는 아주 오픈되어있는 프로젝트이라는

인상도 받았다. 

공공장소에서 흔히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제약들과 시선들에서 ‘틈’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닌가싶다. 

그러고보니 이전작업에서부터 끊임없이 우리는 가면플레이를 하고 있다.

우리 개개인 자체는 사실 노출되어있는데, 가면을 쓰고 어떤 연출을 하고, 이벤트를 벌여왔다..

음… 

  1. boyeon posted this